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.
러·일전쟁으로 재미를 본 일본의 군국주의 열차가 폭주하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패망에 이르는 과정을 읽지 못하고 미국과 영국을 귀축이라고 비판했다.근대화의 실패가 식민지화와 반(半)식민지화를 야기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.
그런데 임오군란으로부터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오만해진 청나라는 천 년이 넘도록 이어져 오던 전통적 조공관계를 뒤집었다.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.이 내용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.
이 때문에 근대적 지식인들에게 조선 정부와 청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 세력.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지식인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에게도 당시 일본은 이상적인 국가였다.
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.
아무리 이웃 나라 정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왕비를 죽이고.일본의 군국주의화와 청의 몰락은 논란이 되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.
러·일전쟁으로 재미를 본 일본의 군국주의 열차가 폭주하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패망에 이르는 과정을 읽지 못하고 미국과 영국을 귀축이라고 비판했다.그런데 임오군란으로부터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오만해진 청나라는 천 년이 넘도록 이어져 오던 전통적 조공관계를 뒤집었다.
이 때문에 근대적 지식인들에게 조선 정부와 청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 세력.이러한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으면서 상호 간에 원인과 결과를 제공했다.